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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팬싸 다녀왔다.
무슨 말로 시작해서 무슨 말로 끝내야할지를 백번 고민했지만 머리에 스치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이건 사기다"
직접 근거리에서 뜨뚜를, 그것도 공연 중에 씬나게 움직이고 돌아다니는 뜨뚜가 아니라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뜨뚜를, 그것도 가끔은 정지화면처럼 jpg처럼 아무 미동없이 어느 한 지점을 멍하니 바라보던 뜨뚜를 한시간 넘게 보게된 경험은 처음이었다.
한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뜨뚜라는 존재를 바라보며 느낀 것은 그동안 내가 사진과 영상에서 봐왔던 뜨뚜랑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보다 더 오밀조밀하고 곱고 갸름하고 빈틈이 없고 날카롭기도 하면서 맨들맨들한 그런 피조물이었다.더 놀라운 것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찾아본 플뷰와 영상들에서 보이는 뜨뚜는 내가 지난 한시간여동안 바라봤던 그 뜨뚜가 아니란 것이었다.
화면은 실제를 왜곡시키고 존재를 흐뜨러트려 거짓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충격이 왔다. 조금 전 내 눈에 직접 담았던 그 뜨뚜를 다시 보는 방법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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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써갔더랬다.
급히 준비하느라 말이 나오는대로 마구마구 휘갈겨써버리고 말았는데 그 와중에도 꼭 전해주고픈 내용이 있었다.
"바비가 조곤조곤 랩한다고해서 우리가 좋아하는 그 에너지가 사라지는게 아니라는걸 알아주면 좋겠다. 바비의 에너지는 무엇을 하든 본인이 즐기고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바비 안에 살아있는 것이란걸"
조금 지난 일이지만 예전에 김밥집에 썼던 댓을 고대로 베껴서 편지에 적었다. 나는 너의 삶에 대한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가족과 친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 그런 것들을 네가 보여주는 순간순간에 네가 가진 생명의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고 풀어 설명했다.
병자들도 같은 마음일지는 모르겠어 좀 두렵긴 하지만 난 정말 저런 말들을 해주고싶었다. 뜨뚜가 온전한 자기 자신을 갖길 바랐다. 그 마음이 전해지길 빌고 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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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긴장을 했다.
이 정도로 떨릴 일인가 싶었지만 심장은 쪼그라들고 손에는 땀이 흥건해졌다. 어디 닦을 곳도 마땅치 않아 옷자락에 손을 문지르고 또 문질렀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끈적이는 내 손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물티슈 같은거 챙겨가라. 당당하게 밥깍지 하고싶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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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뚜의 말에 현혹되지 마라.
뜨뚜 앞에 서서 준비한 말을 꺼냈는데 갑자기 주절주절 관심을 보이며 나보다 더 말을 많이한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뜨뚜와의 대화에 현혹된 나머지 정작 봐야할 얼굴을 보지 못했다. 시퍼렇게 두 눈을 뜨고 있었는데 태어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주한 그 놈의 얼굴이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분명 봤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와 이야기하며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어디를 보고 있었는지, 가까이서 바라본 얼굴은 어떤 생김이었는지, 그 어느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딘가에 깊이 홀렸다 풀려난 느낌이다. 지나고난 뒤 후회하지 않으려거든 멀티 능력을 길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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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잔상들
오늘 뜨뚜머리 황제펭귄 닮은거 같길래 황제펭귄 그림을 그려달라고 할까 대기하는 도중에 생각도 했으나 말을 꺼내기는 커녕 내 씨디에 언제 사인을 해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현혹되었던게 틀림없다.
팬들이 내민 크고작은 선물들에 열심히 반응해주는 모습이 좋았다. 특히 핑크색 주먹 나가는 조그만 장난감을 옆 멤버에게 들이대고 펀치날리는 모습이나, 입으로 뿌 부는 장난감도 받자마자 불어주던 모습, 색색이 꽃달린 머리띠 같은 것을 안경마냥 눈 가리는데 써서 다들 웃음 터졌던 순간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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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그 사이 너무 많이 잊혀져서 억울하다. 기억나지 않는 순간이 더 길고 떠오르지 않는 장면이 너무 많다. 슬프다.
한가지 느낀 것이 있다면, 팬싸 장소 둘레엔 거의 팬들뿐이다. 지나가던 행인 1 이런 분들은 이미 펜스 주변으로 팬들이 너무 많아 안쪽이 잘 안보일뿐 아니라 보여봤자 연예인 보느라 바쁘다. 가기 전에 엄청 걱정했는데 대기 좌석에 앉아서는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걱정말고 가라.
끝.
그 댓 보자마자 기억났다
많은 병자들이 공감했던 내용이었지
잘생긴 얼굴 제대로 못본건 정말 안타깝지만 처음엔 긴장해서 많이들 그럴거라 생각함
병자 나중에 또 갈거지? 뜨뚜란 놈이 한번보면 두번보고 싶고 두번보면 세번 네번 보고싶어지는 놈인것 같아
후기 고마워 잘읽었어 ㅋㅋㅋㅋ
병자는 못봤어도 뜨뚜는 열심히 병자를 살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