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뜨뚜 솔로 앨범이라고 타이핑하니까 겁나 기분 좋다ㅋㅋㅋ)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들이 편하게 들어줄 수 있는 음악 사이에서의 고민은 뜨뚜가 되게 이전부터 해 왔던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쇼미 우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정확한 인터뷰는 못 찾겠다. 아무튼 딥한 힙합곡이랑 익숙하고 대중적인 음악 사이에서 계속 고민했었던 것 같음. 뜨뚜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중간지점”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해 왔는데, 드디어 뜨뚜의 첫 솔로 앨범이 발매되고, 그 지점이 대체 어딘지 어떻게 찾았는지 들여다볼 기회를 얻게 된 것 같아서 흥미진진했다.
중간점을 찾겠다는 건 물론 단순히 어느 한쪽을 포기하고 다른 한쪽을 선택하는 양자택일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 갖고 가겠다는 거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그걸 대중이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 것 같지만, 오히려 생각해보면 양자택일보다 훨씬 더 좋게 풀릴 가능성이 있는 문제 접근 방식이다. 왜냐면 양자택일로 인해 어느 한쪽이 버려지면서 생기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고 현지 트렌드의 강렬한 힙합 쪽으로 너무 치우치다 보면 한국 대중들에게 음악이 너무 생소하거나 어렵게 다가올 수 있고, 반면에 쉽고 익숙한 대중적인 측면에 너무 치우치면 그 쉬움과 익숙함이 오히려 지루함이나 뻔한 느낌이 되어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 스펙트럼의 양 극단 사이에서 적절한 중간지점을 찾아낸다는 건 듣기 쉽고 편하면서도 동시에 지루하지 않고 새롭고 신선한 지점을 찾아내겠다는 포부이기도 하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것. 겁나 어려워 보이는 화두였고, 이걸 뜨뚜는 지난 몇 년 간 계속 끌어안고 있었던 걸로 보였다.
뜨뚜는 이번 앨범에서 여러 스타일을 시도하는 동시에 변화무쌍한 톤과 다양한 플로우 구성을 한번에 진열하는 방식으로 균형의 포인트를 잡은 것 같다. 트렌디한 사운드 위에 밝은 멜로디와 노래하듯 부드러운 랩이 곡 전체 분위기를 잡고 있지만 중간중간 장르에 덜 친화적인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을 러프한 본토 힙합 스타일을 은근슬쩍 끼워 넣어 다소 도전적인 터치들로 곡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방식이 눈에 뜨였다.
예를 들어 “사랑해”에서 편안하고 청량한 비트에 어울리는 발랄한 톤의 랩과 말랑말랑한 멜로디, 캐치한 훅으로 곡을 이끌어 가다가 후반부의 전환점 “설레기 조금이라도~” 부분에서 톤에 허스키한 텍스쳐를 더 넣어 분위기를 확 환기시키는데, 목소리 질감 뿐 아니라 플로우에서도 좀 더 러프한 느낌의 트렌디한 현지 래퍼들의 스멜 (mumble rap)을 살짝 가미해서 즐겁게 한잔 걸친 야생동물 같은 랩을 하더라는 것. (동물은 술 마시면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비유임) 근데 이어서 “너밖에 몰랐었던 나니까” 부터 갑자기 주섬주섬 정줄을 잡고 일어나 이족보행을 하며 감미롭게 노래하는 뻔뻔스러움을 보여줌. 이어서 들리는 익숙한 가사 “사랑을 노력한다는 건” 부분을 이번에는 겁나 멋진 척 섹시하고 나른한 톤으로 부르는데 진짜로 겁나 멋져서 패배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이렇게 계속해서 분위기나 톤, 스타일을 바꾸는 시도가 “다른 세상 사람”에서도 나타난다. 오이지에서 그동안 보여줬던 퓨처바운스 곡들보다 살짝 더 귀엽고 말랑말랑한 비트와 가사 내용과 맞물려서 랩과 노래가 능청스럽게 트렌디하고 멜로디컬한 랩 플로우로 흘러가다가 “너는 주옥같이 예쁜데 왜~” 부분에서 갑자기 막무가내로 좀 더 트랩 스타일의 흥청망청한 톤과 플로우로 변하는게 겁나 좋았다. “Firework”에서 “내게 다가와~”부분에서 슬쩍 들어간 걸쭉한 톤에서도 느껴지는데 이런 부분들이 앞에서 말한 쉽고 긍정적이고 대중적인 사운드에 뜨뚜 식의 약간 도전적인 터치를 넣는 부분인 것 같다고 느껴졌다. 그것도 곡의 흐름을 고려해서 적재적소에, 딱 리프레쉬가 필요하거나 극적인 효과가 필요하거나 할 때 바로 그 적절한 포인트에 적절한 변화구를 던지되 본토 힙합의 현지 트렌드를 반영시킨 신선함을 가미하는 것.
“텐데” 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균형점을 잘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댄스홀을 시도하면서 이 장르에서도 좀 더 팝적이고 대중적인 요소를 강조할 것이냐 아니면 그 뿌리인 정제되기 이전의 레게스러운 면을 더 강조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내렸어야 했을 것 같다. 10년대 팝 뮤직에서 흥한 댄스홀곡 하면 딱 떠오르는 게 “one dance”나 “controlla” 같은 드레이크 곡들인데 우선 떠오르는 레퍼런스가 이쪽이었다 보니 곡 듣기 전에 음감회 소개만 보고 그만큼 이런 스므스하고 부드러운 랩인지 보컬인지를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뜨뚜는 드레이크랑 달리 후렴구 목소리 톤에 허스키하고 와일드한 텍스쳐를 좀 더 넣더라. 뜨뚜가 본인이 말한 소위 “간드러진” 보컬을 못 하는 것도 아닌데 댄스홀 비트에서 일부러 그런 거친 질감으로 다소 강하게 나가서 그런지 벌스에서는 드레이크의 좀 댄디한 댄스홀이나 Major Lazer 같은 댄스홀팝 느낌이 났지만 훅에서는 2000년대 초반 혹은 그 전의 좀 더 와일드한 느낌의 본토 자메이카 스타일과 살짝 더 가까운 쪽의 향기가 났다. (약간 좀 더 날것의 느낌이라는 측면에서 young thug의 “do you luv me”도.) 특히 “텐데 텐데 텐데” 할 때 목구멍 깊이 바운스를 주는 부분에서 굉장히 그쪽 느낌이 물씬 나는데 이렇게 듣고 있으니까 본인이 시도하고 싶다던 뜨뚜표 레게가 굉장히 궁금해졌었음.
이런 식으로 곡의 흐름에 따라 적재적소에 필요한 스타일과 색다른 요소들을 배치하는 방식은 뻔할 수도 있는 익숙함과 새로운 시도의 생소함 사이에서 편하게 다가오면서도 신선하게 즐길 수 있는 절묘한 균형점을 찾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안정적인 대중성과 도전적인 시도의 중간지점. 산술적 중간이 아니라 (아마 예술에선 그런 게 있을 수가 없을 듯) 두 상반되는 요소의 장점만 가져와 마음껏 매력을 발산시킬 수 있는 질적 도약이 이루어지는 지점을 찾은 거 같다. 게다가 이런 부분이 또 동시에 그룹을 하던 가수가 솔로 곡을 할 때 맞닥뜨릴 수 있는 단조로움과 관련한 완급조절 문제들을 극복하는 좋은 방식이 되기도 했던 것 같음.
근데 멜로디컬하게 흘러가는 본토 힙합 랩핑 트렌드를 섞는 와중에 또 발음 흘리는 건 안 하더라. 살짝 흘려서 좀 더 스무드한 리듬감을 줬으면 내 취향으로 좋았을 것 같긴 한데 시도했어도 아마 양싸가 안 된다고 했을 것 같음ㅋㅋ 대신 발음을 딱딱 끊어서 명료하게 제시하는 것 때문에 혹은 한국어 자체의 음성학적 특징 때문인지 랩이 리드미컬하고 멜로디컬한데도 불구하고 살짝살짝 끊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약간 아쉽기도 했음. 근데 또 이게 비트의 bpm이 살짝 빨라서이기도 한 것 같고 트렌디한 랩 스타일을 반영시키면서도 가사전달을 잘 해서 언어적 측면을 잘 잡고 가려고 한 뜨뚜 나름의 균형점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음. 다른 데 반응 보니까 딜리버리 많이 좋아졌다는 소리도 있고. 이 부분은 칭찬할만한 점인 것 같음. 애초에 어려운 랩 메이킹을 좀 덜 하고 문장 끝에 그리고 마디의 끝에 end-rhyme 식으로 쉽게 라임배치를 하고 마디를 살짝 넘나들면서도 과도하게 플로우 중심으로 문장이 끊어지거나 하지 않고 대체로 라인이 마디 안에 안정적으로 놓여진 부분이 많고. 근데 이렇게 테크니컬한 쪽을 좀 단순하고 쉽게 풀어나가면서도 리리시스트적인 측면을 놓지 않아 보이는 건 뜨뚜가 자아낸 언어들이 가진 생생한 표현력 때문인 것 같음. “다른 사람이 듣기에 편하고 신나고 슬퍼하고 많은 감정이 오가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면 이 목표에 잘 부합하는 언어였고 음악이었던 것 같다.
뜨뚜의 이 욕심이 톨스토이의 음악관이랑 일치하는 것 같다ㅋㅋ 톨스토이가 저서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말하길 음악은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하고 할 수 없던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 음악이 그 음악을 작곡한 사람이 머물던 정신세계로 리스너들을 이끌고 가고, 리스너들은 작곡가와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서 그와 함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게 된다고, 음악은 이런 자극이 있고 이런 힘이 있는 예술이라고 하는데, 뜨뚜는 이번 앨범에서 이런 음악의 힘을 십분 발휘한 것 같다. 앨범 들으면서 연애하고 미적미적 끌다가 헤어지고 다른 세상 철벽사람한테 들이대다 차이고 썸타고 수영하고 불꽃놀이하고 기대고 막 난리 난 것 같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테마파크 같은 앨범이었다.
곡을 몇 개밖에 언급을 안 했는데ㅋㅋㅋ 언급 안 한 곡들도 다 좋고 그냥 다 좋다 젠장 뭐 모르겠다 이번 앨범 리뷰 너무 힘들어 원래 마음 같아서는 존나조쿤 짤방만 에이포용지 오십장 빽빽하게 붙여서 제출하고 싶음ㅋㅋㅋ 진짜로 이번 바비 앨범이 좋음. 객관적으로. 트렌디하고 영리하게 센스있게 잘 만든 앨범임. 다양한 시도들을 하면서 팝적인 척 대중적인 척 하고 있는데ㅋㅋㅋ 그 와중에 현지 힙합트렌드를 반영한 멜로디컬한 랩이나 멈블랩 같은 거, 좀 와일드한 포인트들도 막 흩뿌려놓았음. 근데 그런 것들이 너무 스므스하게 잘 녹아 들어 있어서 뜬금없거나 생소하거나 그러지도 않고 그냥 노래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느껴지는데 이게 또 약간 단조롭거나 지루할 수 있는 발랄하고 밝은 사운드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느낌으로 들어가서 곡에 플러스적인 효과를 엄청 주고 있음. 또한 대놓고 그런 요소들을 천조국 히빱 트렌드는 이런거다!! 뽜이야!! 하고 뙇 들이미는 게 아니라 그냥 더 자연스럽고 그냥 리프레쉬되게 해 주는 느낌으로 은근슬쩍 전달시켜서 얼떨결에 별 거부감 없이 커팅엣지한 현지 스타일을 받아들이게 되어 버리는 장점이 생기는 것 같음. 적어도 내가 들은 균형점은 이런 부분이었음. 매우 스마트한 방식인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뜨뚜 겁나 똑띠인 것 같다. 무서운 놈. 진짜로 자기가 하고싶은 음악을 대중들도 좋아하게 만들었음. 두 마리 토끼 다 잡음. 밀렵꾼스웩 리스펙함.
하나 사족을 붙이자면 나도 뭐 된 지 얼마 안 되는 힙합 팬이지만 난 이번 앨범 사운드에 전혀 불만이 없다. 오히려 각각의 사운드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점핑큰절 하고 싶을 지경ㅋㅋ 강렬한 비트의 쎈 힙합 좋아하는 리스너들에게는 아쉬울 수는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노래와 랩을 넘나드는 결과물들이 겁나 좋았다. 요새 많이 듣는 본토 힙합 뮤지션들도 이런 스타일들이 많기도 하고 바비가 타이달라싸인이나 드레이크 좋다고 해서 예상 못 한 것도 아니었다ㅋㅋ 근데 이런 스타일을 시도했다고 해서 ㄴㄴ이거 힙합 아님 랩 아님 이라고 못박을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힙합 초창기에야 알앤비랑 힙합이 같은 아프리칸 아메리칸 음악이면서도 상당히 다른 사이드에 있었던 건 사실이다. Russel Simmons나 Ice Cube같이 힙합 씬에 영향력 있는 사람, 중요한 엠씨들도 알앤비 겁나 까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힙합과 알앤비의 바운더리는 서서히 흐려졌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많은 위대한 힙합 뮤지션들 (Nate Dogg, Outkast, Lauryn Hill 등등)이 그런 시도를 할 때 그들이 힙합을 하지 않는다든가 랩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뭐라 하지는 않았더랬다. 2010년대 들어 이렇게 자유롭게 양 진영을 왔다 갔다 하면서 노래도 랩도 하는 힙합 뮤지션들이 더 많아졌고 사람들은 그런 시도들을 하는 Lil Uzi Vert, Fetty Wap, Tyler the Creator, Drake, Ab Soul, Young Thug 같은 뮤지션들을 자연스럽게 랩퍼이고 힙합 뮤지션이라고 여기고 있다. 바비도 그렇다. 바비 랩이 멜로디를 실어 나른다고 해서 그게 랩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힙합은 계속 변화하는 장르고 그 변화의 흐름 속에 점점 알앤비스럽고 소울스러운 부분이 섞이는 측면이 있는데, 뜨뚜는 이번에 그 부분을 하고 싶어 했던 것 같고 잘 보여준 것 같아서 나는 매우 만족스럽다. 그리고 이건 또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친구가 트렌드에 민감하기도 하고 위에 언급한 자연스러운 힙합의 흐름 같은 걸 다 느껴 봤을 사람이니까.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했고, 그걸 또 겁나 잘 하기도 했다. 쎈 힙합만 힙합인 것도 아니고 내 요새 취향이랑 맞아서 그런지 듣기 좋고 결과물 퀄리티도 굉장히 좋게 잘 빠진 것 같음. 게다가 저 균형점 찾는 문제 때문에 여러 요소들을 적절하게 잘 배치해서 그런지 소울풀하지만 말랑말랑한 솜방망이 같기만 한 것도 아니고 힙합적인 스웩을 대놓고 막 내세우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런 식으로 자기 이야기 자기 음악 영리하게 하고싶은 대로 하는게 더 힙합적이고 간지나는 것 같다고 생각된다.
아 물론 쎈 힙합 원하는 취향도 존중함 나도 쎈 힙합 좋아한다ㅋㅋ 근데 난 뜨뚜한테 어떤 것을 딱 지정해서 듣고 싶다기 보다는 그때그때 뜨뚜가 하고싶어 하는 거 보고싶은 마음이 더 크다. 여러 소재와 주제들을 뜨뚜가 풀어나가는 방식이 상당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언젠간 뜨뚜가 돞하고 딥하고 쎈 힙합 들고 나오겠지 지가 하고 싶으면ㅋㅋ 그것도 기대된다. 근데 그만큼 뜨뚜가 할 레게랑 펑크랑 락도 기대된다ㅋㅋㅋ
다시 말하지만 이건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하는 거다ㅋㅋㅋ 내가 병자 아니었어도 이번 앨범 듣고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을 것 같고 앨범 한번 돌린 그 자리에서 팬 됐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