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빱만수르2014.11.09 23:24
I am 이라는 주제에 맞게 바비의 특유의 매력 – 패기 넘치고 젊고 와일드하고 섹시함 – 을 근사하게 잘 보여준 무대였다고 생각함. 팀 회의 때에 본인이 말한 것처럼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확 갈 때까지 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에 딱 들어맞는 그런 무대가 아니었나 싶음. (그리고 바비가 “마이크를 잡으면 그냥…” 까지만 말해도 “확 갈 때까지 가는 그런!” 하고 받는 도끼의 팀워크에 감탄 또 감탄함. 거기까지만 듣고 가 비트로 해야겠구나 하고 감이 온 것 같은 도끼 표정이 인상적이었던 회의)

일리네어의 원곡 “가”는 처음부터 스크래치 샥샥 긁으면서 포르쉐는 처음이지? 하는 머니스웩으로 시작하지만 돈없고 집없는 외국인 노동자인 바비는 대신 간지스웩으로 도입부 좌중을 압도함. 바비의 “가”는 원곡과는 조금 다른 편곡으로 시작하는데, 도입부에 묵직하게 쫙 깔리는 서브 베이스의 중압감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넓은 공간감을 형성하며, 그렇게 형성된 넓고 낯선 공간 위로 익숙한 “가”의 리듬과 훅이 얹히면서 관객들은 익숙함과 낯설음 사이에서 점차 맥박증가, 혈압상승 등 교감신경이 흥분되는 증상을 느끼게 됨. 이 와중에 바비가 정체불명의 카리스마와 흡입력으로 참가를 유도하면 관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주문에라도 걸린 듯이 훅을 따라 하며 바비가 만들어내는 “바비” 본인의 세계로 자기도 모르게 휩쓸려 들어가게 되는 것임.

이 간지 쩌는 마법 같은 도입부의 묵직한 비트를 그대로 깔고 첫번째 벌스가 시작됨. 바비는 박자 탈 때의 본인을 귀신이나 괴물 등 능동적이고 초인적 존재로, 관객들이나 헤이터들을 자신의 산제물, 혹은 클럽에서 술이나 푸는 수동적인 이미지로 묘사하는데, 실제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자세를 낮추며 시방 위험한 한 마리 짐승처럼 그르렁대는 모습은 레알 정글에서 마주친 야생의 날짐승 같아 raw하고 터프한 매력이 번뜩번뜩 빛나는 것을 알 수 있음. 

이어서 묵직한 베이스 위로 브레이크비트를 바탕으로 한 경쾌하고 화려한 비트가 깔리며 바비의 랩도 플로우가 바뀌어 당당하고 위협적인 느낌의 리드미컬한 랩이 흘러감. 이때 강렬한 무대연출과 자칫 자극적일 수 있는 어휘 선택 (이중의미를 노린 Jay-Z라든가, 떳떳해서 딱딱해진다, 혹은 노모 등)으로 날 것의 느낌을 확 살리고 있는데, “날 것”을 다룰 때 수반될 수 있는 위험성 – 제대로 처리하지 못 할 경우 관객들이 소화하기 어려워짐 – 을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고 젊은 무대연출로 확 잡아 주어서 신선하고 산뜻한, 갓 잡아 올린 팔딱팔딱한 활어회 같이 활기차고 살아있는 느낌과 거부감 없이 강렬한 자극을 주고 있다는 점이 매우 신통방통함.
이어서 바비는 홀랑 배를 까며 본격적인 훅으로 관객들을 실어 나름. 비트도 이제 익숙한 원곡 “가”의 휘끼휘끼 스크래치가 나오며 분위기는 점차 더 고조됨. 바비는 자연스럽게 무대 구석에 놓인 물병을 들고 무대 가운데에서 훅을 “따라해따라해!” 하고 반말로 외치는데 이미 분위기에 휩쓸린 관객들은 저게 하오체인지 합쇼체인지 따질 거 없이 그냥 따라서 “가! 가!” 하고 외치는 진풍경을 연출. 나이도 어리고 무대경험도 많지 않은 연습생이 이 정도의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하고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눈으로 봐도 믿겨지지가 않음. 하지만 더 믿을 수 없는 장면은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데, 이 어린놈이 물병 들고 돌출무대로 두다다 점프하며 날아오름과 동시에 물병의 물을 시원하게 확 뿌려 분위기를 최고조로 이끌어내는 미친 카리스마와 노련함이 녹아 있는 말도 안 되는 연출을 시전한 것임. 그것도 이 무대의 가장 완벽하게 적절한 순간에. “내 박자에 올라타!” 하고 외치며. 더 뺄 것도, 더 더할 것도 없는 마법처럼 완벽한, 가장 중요한 순간. 앞에서 낮게 깔리던 위협적인 공간감은 이미 바비의 생명력과 존재감으로 꽉 차 있고 그 위로 눈부시게 날아오르는 패기 넘치는 비상은 이 시대 한국 힙합씬을 넘어서 세계 힙합씬의 수퍼루키의 탄생을 예고하는 그런 역사적인 현장이 아니었나 싶음. 그리고 관객들은 본격적으로 바비가 보여주는 “바비”의 세계에서 남자친구 차보다 더 빠른 정신없는 박자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는 거임.

약간 안타까웠던 건 바비 본인도 흥분해서인지 훅 이후 두번째 벌스에서 조금 호흡이 딸리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었는데 에너지 넘치는 아우라가 약간의 테크니컬한 마이너스를 훨씬 웃도는 플러스 요소였기 때문에 약간 아쉬우면서도 좋은 양가감정이 들었음. 쇼미콘서트에서 약간 덜 흥분하면 호흡 딸림 없이 제대로 가사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때는 움직임이 조금 소극적이라서 역동성을 포기해야 클리어한 발음과 안정된 호흡이 가능한 건가 하는 걱정을 조금 하기도 했지만 이 부분은 바비가 알아서 개선하리라고 생각함. 개인적으로는 역동성과 명확성을 둘 다 챙겨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 이와는 별개로 두번째 벌스에서 다시 고양이과 맹수가 맹렬하게 달리다가 풀쩍 뛰어 내려와 웅크리며 잠시 몸을 사렸다가 다시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듯한 절묘한 완급조절이 돋보였음. 우왕! 하며 다시 덤벼들어 달리며 어디선가 나타난 댄서들과 함께 방방 뛰면서 관객들을 흥분시키며 뛰고 소리치게 만들며 무대를 아주 부숴버릴 듯 휘젓는데 대체 얘는 어디까지 확 가려고 하는 걸까 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바비오빠를 외치며 모니터 앞에서 침을 흘릴 수 밖에 없었음.

다른 감상이 길어져서 가사의 테크니컬한 점은 살짝만 짚고 가겠음. 우선 도입부 벌스1의 괴물/제물/재능/멘붕, 모음 ㅓ 로 마감한 라임들이 좋았고, ball So/(fabu)”loso”/벌써, 제이지/패-기/뺑-기 등으로 리듬감을 살리는 in-rhyme도 멋졌음. 두 번째 벌스에서는 팔리는지/감기듯이/망치듯이/잡치는지의 다음절 라임의 영리한 활용이 매력적. 동시에 ㅏ를 이용한 모음운도 깨알같이 리듬감을 살려줌. 곳곳에 강호동 이만기나 도끼의 비스듬하게 걸쳐 등 레퍼런스를 이용한 재치 있는 가사도 괜찮았음. 마지막에 자음 ㅂ와 모음 ㅏ를 집중적으로 때려 넣은 라임활용이 돋보이는 와중에 방화범/테러범/방범 등의 깨알라임을 살리는 것도 잊지 않아 가사 듣는 즐거움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음.

마지막으로 하나 살짝 덧붙이는 귀여움으로는, 여러 번에 걸쳐 보여준 복근 서비스ㅋㅋ 왜 바비는 남탕에서 배를 까고 형들의 배뚜들김을 받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여성 시청자들도 매우 좋아했고 나도 매우 즐거웠으니 넘어가도록 하겠음. 하지만 이후 쇼미콘 등에서는 복근 공개를 고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안타까움을 남기고 있음. 어쨌든 쇼미 “가”의 바비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아주 제멋대로 무대를 지배하는 박자귀신, 괴물, mic controller, master of the ceremony 였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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