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 년여 전이다. 내가 아이돌을 빨아 본지 얼마 안 돼서 갈팡질팡 할 때다. 그놈의 와이지 가수들, 또 안 나오나 싶어 엠넷이며 합정동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와이지 사옥 맞은쪽 길 가에 앉아서 김밥을 말아 파는 총각이 있었다. 김밥이나 한 줄 사가지고 가려고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김밥 한 줄 가지고 값을 깎으려오?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총각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말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말고 있었다. 처음에는 햄이며, 지단이며 분주히 부치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말았다, 저리 말았다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준비가 다 됐는데, 자꾸만 말지는 않고 느물느물 밥을 펐다가, 참기름에 깨를 섞고 있는 것이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음방 스케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체 대꾸가 없다. 점점 입장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곱게 말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말겠단 말이오? 총각, 외고집이시구려. 차 시간이 없다니까....."
총각은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음방 스케줄은 이미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말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김밥 옆구리가 터진다니까. 김밥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말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말던 것을 숫제 어깨에다 얹고 태연스럽게 크럼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총각은 또 말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총각이 김밥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김밥 끄트머리를 이리저리 조물대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김밥이다.
음방을 놓치고 다음 주를 기다려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총각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총각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와이지 사옥 꼭대기를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연습생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데뷔에의 갈망에 가득 찬 눈매와 토실한 눈두덩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총각에 대한 서운함이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집에 와서 김밥을 내놨더니, 빠돌이인 동생은 예쁘게 말았다고 야단이다. 요즘 회사에서 찍어 내는 김밥들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동생의 설명을 들어 보면, 요즘 김밥은 속이 텅 비어서 먹을 것이 없거나, 실없는 재료로만 꽉 채워 대충 말아서 옆구리가 금세 터진다는 것이다. 요렇게 속이 꽉 들어차면서도 깔끔하게 말아 내어 입에 착착 달라붙는 김밥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총각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중략…
예로부터 와이지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生計)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볼만한 예술품을 만들어 냈다. 그 총각은 와이지 연습생이었을 것이고, 이 김밥도 그런 심정에서 말았을 것이다. 나는 그 총각에 대해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김밥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김밥이 나 같은 빠순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실력파 김밥 장인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총각을 찾아가 프링글스에 빨간소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음방을 뛰러 가는 길로 그 총각을 찾았다. 그러나 그 총각이 앉았던 자리에 총각은 와 있지 아니했다. 그새 슈스가 된 모양이다. 나는 그 총각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을 전할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와이지 사옥의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양 사장의 방이 보였다. 아, 그 때 그 총각이 저곳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김밥을 말다가 유연히 사옥 꼭대기의 양 사장을 바라보던 총각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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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알/밥 뭐 이런 언급 보면서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이게 생각나서....슈스밥 장인정신을 표현해보고싶었음
사실 힙갤 조정래임
즐감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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