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후 4일간 마음 정리가 안 되서 밥집을 들락날락하던 병자다.
병자들의 글을 읽으며 내 마음이랑 너무 똑같아서 짠하기도 하고, 좀 다른 반응을 보이는 병자들을 보면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또 해학의 민족답게 이 상황에서도 개그로 슬픔을 승화시키는 병자들을 보면서 웃기도 했어.
그러다가 오늘 문득 바비와 관련된 물건들을 정리하고 싶어지더라. 그 동안은 내 마음 하나 추스리기 바빠서 방치해 뒀었는데 어느 정도는 정리할 힘이 생겼는지.
ㅇㅇ!라고 내 이름이 적힌 사인CD부터, 바비 얼굴이 대문짝하게 그려져 있는 담요, 럭키맨 굿즈로 산 케이스..하나씩 정리해 나가는데..
이걸 발견하고는 순간 띵했어.
바비팬이라면 다 알만한 유명한 팬분이 만드신 올해 달력 표지인데, 이 문구가 바비가 직접한 말인지, 노래 가사인지, 만드신 분이 직접 쓰신 건지조차 모르지만 확실한 건 바비가 젊음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는 거. 새삼 기억나면서 와닿더라..
그 동안 배신감과 상실감에 젖어서 잊고 있었는데, 맞아 이렇게나 젊음, 청춘을 노래하던 사람이었지 너.
지금 상황에서 어쩌면 제일 힘들고 가장 많은 변화를 맞이하고 가장 많은 짐을 지는 사람은 너겠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
아니? 사랑 주고 믿음 준 팬들만 마음 고생하고 정작 본인은 행복하게 살 거 같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나도 그런 생각 때문에 계속 분하고 화났었고 괴로워 했었으니까.
그런데 왠지 모르게 저 표지를 보는 순간 확실해지더라.. 내가 아무리 마음 아프고 힘들어할지라도 최종적으로 이 일로 가장 타격을 받는 사람은 너야.
커리어에 오점이 생겨도 네 커리어고, 팬들과 멤버들에게 준 상처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을 제대로 질지 안 질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모든 걸 안아야 할 당사자도 너, 자유롭던 청년에서 이전의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는 가장으로 역할이 바뀌는 사람도 너, 송두리째 바뀌는 것도 너 인생이니까.
분명 너를 많이 좋아하고 응원하던 나로선 큰 타격이 있었지만 너만큼은 아니겠지. 내 인생은 아니니까.
분명히 난 큰 상처를 받았지만 상처가 아물때까지만 힘들어하다가 다시 내 인생 잘 살면 되겠다.
이런 생각에 도리어 고마워?지기까지 하더라고. 상처가 아물고나면 난 오히려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너 덕분에 이런 경험도 해본다.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책에서 나온 개념이 퍼뜩 떠올랐어. ‘타인의 과제’라고, 각자의 할 일과 과제, 영역이 정해져 있고 타인은 절대 그 과제를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개념인데 전에 한 병자가 말한 극성 부모 비유와도 같은 맥락이야. 그 책에서도 타인의 과제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부모-자식 관계로 예를 들거든. 혹은 말과 주인의 관계라든지. 말한테 물을 먹이기 위해 주인이 우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는 것까지 주인이 해 줄 수 없다는..
어찌보면 그냥 내 인생과 바비의 인생을 구분 지어 보게 됐다는.. 그러면서 괴로움이 한결 덜어졌다는..단순한 얘기를 구구절절하게 썼네.
이 글을 읽고 걔의 입장을 헤아려 보라고 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병자들을 더 속상하게 할 수도 있을까 싶어서 쓸까 말까 고민하다
혹여나 한 명이라도 마음이 가벼워지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하는 마음에 써 봤어.
얼마나 마음고생했을까, 제일 힘든 건 너겠지, 그래 네 잘못 없던 일로 해줄게 이런 게 아니라,
제일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은 어차피 걔니까, 응원을 하든.. 여기서 멈추든 우리는 좀 내려놓고 편해지자고..
구구절절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많이 힘들겠지만 다들 괜찮아졌으면..
계속 심난했는데 병자말이 맞는 거 같다
미혼때만 할 수 있는 음악을 더 못본다는게 안타까워 슬펐는데 어차피 본인이 감당해야할 문제고, 언젠간 일어날 일이 빨리 온 것 뿐이라고 생각해야지..
그리고 잘못된 시기로 인해 팀에 민폐 끼치게 된 건 아직 컴백 결과가 나온 것 아니고 (팬덤 흔들어논건 이미 눈에 보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멤버들의 의견인데 멤버들이 이해하고 용서해준다면 나도 어찌어찌 그냥 넘어가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보니 회사가 부디 일 잘해주길 바라게 되네. 바비를 잘해주란 말이 아니라 5명한테 부디 잘해서 애들 앞길 창창하게 잘 열어주었으면
그래야 나도 바비를 덜 미워하게 될 것 같아